오래전 나는 메모를 하는 습관을 그만두었다. 메모들을 읽어보면 세상사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진부한 이야기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또 자기 계발을 주제로 삼은 책들을 제일 싫어했던 점도 메모를 그만두게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류의 책들은 서로 아무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을 팁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막상 읽어보면 대단히 중요하지도 않다. 노트에 메모를 해도 그 메모가 훌륭한 결과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메모를 작성하는 법들을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자기관리, 의사결정, 개인적인 성장 등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 메모하는 법을 잘 숙지하면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과학적인 분석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훨씬 논리적이다. 좋은 책을 만나면 깊고 심오한 내용으로 큰 영향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책들은 정말 적은 양의 지혜를 두꺼운 솜털로 감은 것같이 작성돼있다. 그럼 나는 순수한 물질을 찾기위해 증류하는 화학자가 된 것 만 같다. 쓸데없는 솜털들을 벗기고 드러나지 않은 지혜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과정이 너무나 짜증나지만 정말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버틴다. 그렇게해야 지혜의 덩어리를 만났을 때 문장 하나하나에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혜가 없는 책은 하나의 아이디어만을 쥐어짜듯이 짜내서 쓸데없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와 반대로 지혜가 가득한 책은 모든 장에 여러가지 유익한 아이디어가 가득하고 모든 단락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고 요약을 통해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메모는 이 책들에서 중요한 에센스를 뽑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1. 글쓰기는 사고의 결과가 아니다.
글쓰기는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이자 중간매체이다. 사고는 글쓰기와 함께 시작한다. 글쓰기가 자리에 앉아서 한 단락씩 종이에 써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그것보다 훨씬 먼저 시작된다. 글이나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거나, 흥미로운 대화와 살면서 겪었던 경험등을 메모로 작성할 때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작성된 메모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비축된다. 거대한 이론을 창안하기위해 메모를 하는 것이 아니다. 메모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위한 도구이고 내가 읽었던 정보들이 흝어지지 않고 내 두뇌 속 저장소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기법 중 하나이다. 만약 무언가 배우고 싶고 또 잊지않고 기억하고 싶다면 제일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 개념을 나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쓸 수 있어야 한다.
일단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자료가 될 수있도록 모으면 나중에 책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단순히 개인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분명히 보여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발전시킬 수도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더 깊은 수준으로 읽어야 한다. 끈임없이 질문을 하고 다시 한번 더 책을 뒤져 본다.이처럼 글쓰기는 그 자체만으로 사고능력을 확장시킨다. 단순하게 읽기만 하는 것은 글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을 수 없다.
배우고 글을 쓰는 것은 이해의 영역을 더 넓혀준다. 이미 이해하고 배웠던 것도 글을 쓰면 더 확장되고 잊지 않도록 견고해진다. 책의 내용을 진짜 이해하려면 연관된 개념과 의미를 격자를 치듯이 엮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기억하기 쉽고 이해가 된다. 예를들어 동맥은 빨간색,정맥은 파란색이라는 사실 자체는 기억하기 쉽지만 또 헷갈리기도 쉽다. 그때는 동맥은 피산소포화도가 높은 상태인 피를 심장부터 몸 구석구석으로 운반하고 정맥은 산소포화도가 낮은 피를 심장에서 받아서 나른다는 사실을 엮는 것이다.이렇게 개념들 간의 의미 있는 연결고리가 생기면 기억하는 것이 더 쉽고 실수도 줄어든다.
다만 알고있는 지식의 범위는 한정되고 세상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렇기때문에 항상 다른 글을 읽고, 번역하고, 다시 내 언어로 작성하고, 비교하고 대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심을 하여 나만의 언어를 사용해 개념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다. 내가 알고있는 것들과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가?이 이론으로 실제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을 계속 나에게 던지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단순히 우리 뇌 속에서만 이뤄지도록 둔다면 더 해결이 어려워진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질문을 해결하는것을 도와줄 수 있는 외부의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그리고 글쓰기는 이 세상에 있는 어느 것보다도 가장 효과적이고 편리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2. 글쓰기는 제일 중요하다
글을 안 쓰면 당장 쓰러져 죽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글을 게시해야 한다.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조사를 하고 글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외부에 공표하기 위해서는 정밀하게 검토와 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들만 학술잡지나 블로그에 자신의 작품을 게재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쓴 모든 글들은 타인들에게 공유할 수 있다.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주거나 교수에게 과제를 제출하고 동료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잠재고객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을 글로 쓰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익숙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머리속에 이런 질문들이 한 번쯤 떠올랐을 것 같다. 이제 막 초안을 작성한거나 반만 완성된 상태라도 꼭 외부로 게시를 해야 될까?내가 생각한 이론이 너무 말도 안 되고 혹은 아직 입증도 거치지 않았다면 그래도 게시해야 될까? 이런 질문이 떠오르면 괜히 일단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만 싶어 질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바뀌기 위해서는 글을 쓰고 게시까지 해야 한다.이런 명확하고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글쓰기의 질이 올라간다. 그래야 더 집중하고, 질문하며 더 철저하게 완벽해지려고 한다. 많은 세부사항을 적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고 가장 핵심이 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배우려고 할 것이다.
이제 글을 쓸 때 출판을 최종 결과물로 염두하고 작업을 진행할 것이고 많은 삶이 글쓰기 위주로 바뀔 것이다.책도 좀 다르게 읽을 것이다. 더 집중할 것이고 당신이 쓰려는 주제와 관련된 논쟁은 더 파고들 것이다. 그리고 더 날카롭게 질문할 것이다. 애매한 설명에 만족하거나 논리적으로 비약하지도 않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 그것이 함축하는 것과 잠재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서 읽고 활자 너머의 영역으로 사고능력이 확장될 것이다.
3.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은 없다.
창의력이 무에서 시작한다는 믿음이 있다. 백지장, 흰 캔버스, 빈 방, 등 맨땅에서 출발하는 것이 창의력의 정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를 할 때 일반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 번째로 주제를 선정한다. 그다음 조사를 진행하고 토론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결과를 도출한다. 그러나 책을 읽지도 않고 흥미로운 주제를 선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야 가능하기 때문에 자료조사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도 뜬금없이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흥미를 유발하면서 동시에 그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만 해당 주제를 과제로 삼을 수 있다. 지식을 탐구하는 모든 시도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위한 선행과정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과정은 일종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일단 무엇을 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자료조사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자료조사과정은 원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몇주 혹은 몇 달이 걸리는 건 기본이고 배경지식이 너무 없거나 탐구해야 할 과제가 많으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작업할 자료를 찾는 과정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조사과정을 더 엄격하게 기록할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메모를 하는 것은 글쓰기를 향상하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메모는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체계적이고 보기 좋은 글로 만들어 외부에 공개할 수 있게 한다. 사전조사를 하면 내 생각과 자료를 쌓아간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뇌에 저장된 정보만으로 계획을 따라가는 것은 답답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쌓아놓은 메모를 보고 다시 한번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한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빈 워드 파일을 보면서 ‘일단 적자’라는 막무가내 정신을 앞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맨 땅에 헤딩하듯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식으로든 경험이 있거나, 조사를 했거나, 이해하기위해 선행되는 과정이 꼭 포함됐을 것이다. 그리고 메모를 하는 것은 조사과정을 쭉 다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출처를 명확하게 할 수 있고 글을 논리적으로 적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작부터 메모를 하지 않으면 첫 단계로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
글을 쓰는 방법을 기술한 글을 보면 대부분 브레인스토밍을 맨 처음에 하라고 적는다. 메모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마치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 미래를 위한 저축을 시작하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결과물을 도출하기까지 너무 늦고 자료도 충분하게 확보할 수 없다.
메모를 작성하는 습관은 세속적인 관습의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메모가 쌓이면 각 메모들끼리 섞고 연관 있는 것들을 연결한다. 그럼 새로운 패턴과 양식이 보인다. 이것을 다시 메모로 쌓아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체계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아 정보를 연결 재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신선한 정보들을 얻는 것이다.
자료의 축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글을 쓸 때 자료가 없어서 글이 막히는 경험은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전에는 자료가 부족해서 글을 쓸 때 흐름이 끊기는 경험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필요한 정보를 중심으로 깔끔하게 묶어내는 것이 더 큰 과제로 남는다.
4. 메모를 하자
글쓰기 작업이 순차적인 작업이 아니라고 해서 되는대로 하라는 뜻은 아니다. 글을 쓸 때도 작업 과정이 엄연히 존재한다. 자료조사 – 조직화 – 생각공유 의 과정은 글쓰기를 하는 중에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 한다.초안을 작성한다. 서론,본론,결론 3단으로 문단을 구성한다. 핵심 주제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예시를 많이 들어 생동감 있게 글을 묘사한다. 마감시간을 만든다. 각각의 단계들은 그 자체로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숲을 보면서 서로 잘 들어맞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그냥 일거리만 늘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글쓰기 팁에 정신을 뺏기면 전체 글이 엉망이 될 수 있다. 메모를 통해서 각 자료들을 통합할 수 있고 유기적으로 연결해 준다. 글쓰기전 사고단계에서 복잡성과 혼란을 최소화해준다.메모를 통해서 사고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방대한 메모 자료는 글쓰기 근거가 돼준다. 이런저런 팁에 정신을 뺏기지 말고 메모를 하고 자료를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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